지옥 가는 크리스챤 ???
2011.03.10 12:11
*** 이 책을 읽으면서. 늘 들었던 생각은. 책의 제목이 잘못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지옥에 가는 '교인(교회 다닌 사람들)' 들 - 이 맞는 말이지, 크리스챤(성도)이라면 결코 지옥에 갈 순 없다고 믿기때문입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문제는 - 교인들이 다 크리스챤이라는 '착각' 때문에 생기겠지요 ^^;;
크리스챤은 교인이지만. 모든 교인이 크리스챤은 아닙니다. 시간이 흐를 수록. 세월이 악해져갈수록.
교인 가운데 거듭난 하늘백성(크리스챤)의 비율은 정말 얼마 안되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저 자신을 포함한
우리 모두의 '두려움' 이 아닐 수 없습니다....
책을 읽어보신 분도 계시겠지만, 아직 읽지 않았다면 - 이 책의 '요약' 내용을 꼭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아울러, 변승우목사가 서문에서 예를 들었던 토마스 주남 여사의 '천국' 간증 내용도 -
꼭 동영상으로라도 보시길 권합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mTyp1Z_4FtY ( 4편을 계속해서 link 할 수 있음)
때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낍니다.
정말 그 날은? 우리 주님의 표현대로 올 것입니다. - '도적같이' ....unthinkable Time & Moment.
이집트가 18일만에 무너지고.. 지금은 리비야. 또 앞으로도 계속 -
이 '세상'이란 것이 - 얼마나 '빈약'하고 '허무' 한 것인지를 - 오늘도 주님은 분명히 보여주고 계십니다 ^^;;
아무쪼록. 그 날에. 담대히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
소원합니다.
샬롬!
2011 - 3-10 이목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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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 가는 크리스천들' 책의 서문;
예수 믿고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지옥 가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오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 7장 21절
이 말씀은 거짓 없는 진리이고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조나단 에드워드, 존 웨슬리, 조지 휫필드, 찰스 피니, 리차드 백스터, 토마스 왓슨, 조셉얼라인과 청교도들은 이 진리를 매우 분명하게 선포했습니다. 찰스 하지, 드와이트 무디, 에이든 토저, 로이드 존즈, 존 스토트도 이와 맥을 같이 합니다. 그런데 다수의 현대 교회가 이 진리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영혼들이 기만 당하고 멸망할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이와 같은 때에 조용기 목사님이 번역하고 토마스 주남 여사가 지은 "천국은 확실히 있다!"라는 책이 나와 "마음이 청결하지 않고 불순종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하고 재 강조한 것은 늦은 감은 있으나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천국은 확실히 있다!"는 지난 7년간 17번이나 천국에 갔다온 토마스 주남 여사의 경험을 간증한 책인데, 주님은 그 책에서 "교회들 중 단지 약 20%의 교회들만이 예수님을 최우선으로 놓고 있꼬 나머지 교회들은 사람들이하는 말이나 재정 수입을 늘리는 일에만 마음을 쓰고 있다."고 탄식하셨고..
또 "기독교인들 중에 20%만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인"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책에는 또 다음과 같은 충격적인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이 내 머리 위에 손을 대시고 내 손을 잡으신 후 나를 캄캄한 터널아래로 이끄셨습니다. 우리는 또 다른 거친 길로 나왔는데, 그 길은 저 멀리지옥 구덩이에까지 이어져 있었습니다. 이 산길은 키 큰 나무들과 거대한 바위들 사이로 나 있었습니다. 우리가 정상에 도달했을 때, 나는 생명체라고는 없는 갈색 골짜기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곳은 모두 갈색이었습니다. 그 지역은 전부 죽은 풀로 덮여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았는데, 그들은 누런 색 옷을 입고서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그 지옥 구덩이 주변을 무작정 배회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고개를 떨구고 있었으며 매우 낙담하고 희망을 잃은 모습이었습니다.
'주님, 이 사람들은 누구예요?" 나는 주님게 물었습니다. '그들은 불순종한 크리스천들이란다.'
'이 사람들은 이 황폐한 불모지에 얼마나 오래 머물러야 하나요? '영원히 머물러야 한다. 나의 나라에 들어올 사람들은 오직 마음이 순수한 사람들 곧 나의 순종하는 자녀들분이란다.'
주님은 계속 설명해주셨습니다. '자칭 크리스천이라는 많은 사람들이내 말대로 살지 않는다. 그들 중에는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가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내 말을 전혀 읽지 않고 이 세상일들만 좇고 있다. 내 말을 아는 사람들조차 그 마음이 도무지 나와 함께 있지 않구나.'
나는 하나님의 모든 계획과 목적을 분명히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쉽지 않다고 예수님이 경고하셨던 것을 기억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경고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습니다.
'내 딸아, 천국은 들어가기가 힘들다고 내 말은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진실로 믿거나 그 중요성을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구나. 나는 너로 하여금 그들에게 경고할 수 있도록 너에게 이 사실을 보여 주고 있는것이란다.'라고 주님은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책의 다른 부분에서 예수님은 주일낮 예배만 겨우 참석하는 사람, 인색하여 십일조도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 미지근한 신앙을 가진 사람, 주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비록 크리스천이라도 천국에 올 수 없다고 엄중하게 경고하셨습니다. 심지어 주님은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내 딸아, 많은 목사들이 내가 네게 보여주었던 그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가게 되고 그들의 성도들이 따르게 되리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구나."
그러면 한가지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토마스 주남 여사에게 한 이 말들이 정말로 이해가 가십니까? 즉 성경 적으로 이것이 진리임을 확신할 수 있습니까?
저는 주의 자비와 은혜로 이미 20년 전부터 성경을 통해 이것을 알고 있었고 외롭게 그것을 전해왔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성령께서 저에게 가르쳐주신 '성경적인 구원론'을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책을 내놓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대단히 중요한 책입니다. 왜냐하면 토마스 주남 여사의 책이 구원론에 대한 체험적인 책이라면 본서는 구원론에 관한 성경 적이고 계시적인 메시지를 모아 그것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저 말고 이 책을 사서 읽으십시오. 그래서 '예수 믿고' 지옥 가지 말고 '제대로 예수 믿고' 꼭 천국에 가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2004년 3월 4일 오전 8시
울산광역시 북구 명촌동 큰믿음교회에서 변승우 목사
▶ 지옥에 가는 크리스챤들 - 변승우 목사 / 요약
구원은 단순히 기독교의 구원교리를 지적으로 이해하고 그것이 진리임을 마음으로 확신하는 사변적인 믿음, 즉 귀신들도 가지고 있는 믿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76p)
☛ (약 2: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우리는 우리의 행함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를 살펴야 합니다. 왜냐하면 행함이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이나 기대 혹은 소망에서 나오는 것일 경우 그것은 복음적인 순종 이 아니며 따라서 그런 믿음은 참 믿음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86p)
바울이 비판적으로 사용한 '행위'라는 단어는 자기 힘으로 구원을 얻으려는 행위, 즉 '율법의 행위를 의미합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습니다. (롬3:20) 그러므로 이것은 어리석은 시도입니다. 하지만 야고보가 말하는 '행함'은 바울이 로마서에서 언급한 율법의 행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믿음의 행함'입니다.
전자는 구원받기 전에 나타나는 행위이고 후자는 구원받은 자에게 나타나는 행함이고, 전자는 실현 불가능하고 후자는 실현 가능하며, 전자는 인간의 공로가 될 수 있으나 후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즉 이 말은 믿음 때문에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율법을 지키는 비결이 됨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3:31절에서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109p) 그러나 그 말은 바울이 율법을 준수함으로써 칭의를 얻기를 기대하는 유대인들의 오류를 지적하여 항의한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중략.........
그러나 그들은 바울이 말한 행위와 야고보가 말하는 행위가 서로 별개라는 사실을 간과했던 것입니다. (110p)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하여 죽으셨다는 사실을 그들의 소망의 바탕으로 삼으려 하지만, 분명히 말할 것은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은 회개치 않고 계속 죄 가운데 있는 완고한 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죄악을 붙들고 있는 그대를 그리스도께서 구원해 주실 것 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구세주를 죄인으로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 일이며,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악한 사람들과 지옥에 있는 마귀가 그렇게 했거나 그럴 수 있었던 것보다 더 하나님의 위엄을 떨어뜨리는 것이 된다. 그런데도 그대의 참람한 소망을 포기하지 않겠는가?" (55p)
칭의는 단순히 기독교의 교리를 수긍하는 사변적인 믿음을 가진 자에게가 아니라 회개하고 믿고 거룩해지는 자에게만 주어집니다. (111p)
거룩은 그것이 없이는 구원이 불가능하다는 의미에서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구원이란 원칙적으로 이런 마음의 변화에 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구세주이신 것은 그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거룩해지지 않는 사람은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 .........중략.........
구원은 그저 죄의 형벌에서 건져내는 것만이 아니라, 죄의 권세에서 구해내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구원이란 육체의 소욕과 마음의 악한 욕심에 종이 되어 있는 상태에서 자유를 얻는 것이다... 이것이 구원이다... (113p)
칭의와 중생은 떼어놓으려 해도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면서도, 또한 서로 구별되는 것입니다. 칭의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이고, 중생은 우리 '내면에서 실제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115p)
그들은 만일 자기들이 하나님께서 오직 한 분이신 줄 믿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 등을 믿으며 세례를 받았다면, 그것만으로 자신들의 구원은 안전하며 이제는 어떻게 살든지 상관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가르침은 사람들을 방탕한 삶으로 휩쓸어갔습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야고보서를 기록한 사도 야고보의 목적은 분명히 이런 오류와 반대되는 진리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중략........
그러므로 사도 야고보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야고보는 믿음에 행위가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그 믿음이 참된 믿음이 아니라는 단적인 증거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 바로 이것이 야고보서를 기록한 사도 야고보의 취지였습니다. (124p)
물론 이 경우에도 믿음은 단지 복음 진리에 대한 지적 수긍이나 동의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을 진실한 마음으로 임금과 구주로 모셔들이고, 그리고 새 삶을 위해 주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하는 바로 그런 믿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순종이 씨앗 혹은 뿌리의 형태로 그 안에 있으면 그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필연적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여기에 아직 가시화 된 행위가 들어가 있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의롭다 함을 얻는 최초의 순간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것이 맞습니다.(129p)
누군가 한 말이 기억납니다. "무디는 80만 명을 전도했고 찰스 피니는 50만 명을 전도했다. 그런데 무디의 회심자들의 80%는 세상으로 돌아갔고 피니의 회심자의 80%는 끝까지 믿음을지켰다." (130p)
존 스토트는 "중생은 심오한 내적 변화요, 하나님이 주시는 새 생명의 심기움이요 새 성품의 증여요 새 마음의 선물" 이라고 했고, (137p) "당신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 당신은 왜 죄를 짓습니까? 당신의 됨됨이 때문입니다. 당신이 당신이기 때문에 당신이 하는 것을 당신이 합니다.. (144p)
새로 태어나는 것은 새로운 천성을 의미하며 그리고 우리가 거듭나고 그래서 그 새 천성을 받기 전까지는 결코 달리 행동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로 태어나야 할 절대적인 필연성이 있는 것입니다. (145p)
여러분은 오직 하나님의 생명만이 하늘나라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자연적인 생명은 거기에 있을 자리가 없습니다. 물고기에게 주어진 생명은 그로 하여금 물 속에서 살 수 있게 하는 생명입니다. 새의 생명은 그것으로 하여금 공중에서 생존하는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생명은 하늘 나라에 적합한 유일한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에 들어가서 생활하려면 반드시 이 땅에 있을 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므로 하나님의 생명을 얻어야 합니다. (148p)
타락으로 인해서 우리에게 두 가지 일이 일어났습니다. 우리의 신분이 변화된 것과 동시에 우리의 본성이 변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원래 신분을 되찾는 일은 우리의 본래 본성을 다시 변화하는 일과 동일하게 추구 되어야만합니다. (163p)
대부분의 설교자들은 이 말씀을 설교할 때 "현재 우리가 불의할 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 피를 믿는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인으로 간주해주신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칭의이며, 이것이야말로 종교개혁을 통해 부활 된 진리의 가장 진수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주장해야만 정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통은 종교개혁자들의 주장에 일치하는 견해를 갖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주장과 일치하는 견해를 갖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선입견이라는 안경을 쓰고 봅니다. 그래서 그들의 눈에는 이 말씀이 실제로 그런 진리를 선포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죄'와 '불법'은 믿기 전에 행한 불법이지, 거듭난 자들이 가져야할 순종에 반대되는 불순종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즉 본문에서 바울이 말한 죄와 불법은 현재까지의 죄, 보다 엄밀히 말하면 과거의 죄이지 현재 내가 종노릇하고 있거나 고집하고 있는 죄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현재 죄의 노예가 되어있는 그런 사람을 하나님이 예수님의 피를 보시고 무조건 의롭다고 인정해 주신다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167~168p)
육체를 떠난 영혼은 자기에게 있었던 모든 일들을 알게 됩니다. 기억이 모두 살아남으로써 그들은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의 빛이 악인들에게 비취면 그들은 곧 자신들이 성도와 천사들과 함께 동거할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그들이 그곳에 있는 모든 것이 자기들에게 적합하지 않음을 알고, 천국을 떠날 수 있도록 간청하며 그곳을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그들을 쫓아내시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은 담장과 대문이 있어서 통행증을 제시해야 하는 곳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온 삶이 곧 통행증이 되는 곳입니다.
중생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편안함을 느끼게 되지만, 중생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진정한 심판이란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며, 이 심판은 매일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심판은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그가 개입하시는 행동의 결과가 아니라, 바로 내적인 것입니다..........중략.........
"용서가 없다면 우리에게는 하늘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고, 새로워진 마음이 없다면 하늘나라를 즐길 수 없을 것이다." (174~175p)"
천국의 보상은 우리 안에 합병되어 있고 다름 아닌 우리 영혼의 기질 안에 아로새겨진 어떤 것입니다." (176p)
마귀의 본성에 하나님을 향한 적의가 남아있는 한, 설령 그가 천국에 들어간다고 해도 그는 만족을 누리기는 고사하고 괴로움만 느낄 것입니다. 사악한 사람의 경우, 그가 그 자신의 심각한 고통을 계속 지니고 있고 그 마음에 맹렬한 기세로 들끓는 정욕을 품고 있는 한 천국의 한복판에서도 지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정욕은 자신에게 어울리는 대상을 발견하지 못하면 그 어떤 것으로도 만족을 얻지 못하고 자신이 있는 장소를 있는 그대로 만족스럽게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천국에서 행복의 참된 본질에 반대되는 본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눅 17:20~21) 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라는 장소가 실재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 나라의 시작과 본질적인 성격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을 뿐입니다. 주님이 지적하신 대로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지옥 역시 사람 안에 있습니다. (177p)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도 행복할 수 없다" 이 진리에는 특별한 가치가 있습니다. (178p)
"구원은 믿음으로 상급은 행함으로 받는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받는다. 그러므로 믿기만 하면 아무리 죄 가운데 산다 할지라도 적어도 부끄러운 구원은 받을 수 있다???." - 오늘날 이 말은 교회 안에서 하나의 전통적인 진리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이것은 비 진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교회 안에서 당당히 진리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중략...........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7:21)라는 주님의 말씀이나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약 2:14)라고 말한 야고보의 말과도 일치되지 않습니다.그러므로 이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이것은 교회 안에서 역사하는 미혹의 영들이 만들어낸 거짓 교리입니다. 그리고 교회안에 미혹의 영들이 역사하고 있다는 가장 명백한 증거이기도합니다. (185p)
이것은 행함과 구원과의 관계를 다룬 말씀이 아니라 사역과 상급과의 관계를 다룬 말씀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역자가 상을 받게 될까요?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주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고전 3:12~15) (200p)
즉, 금은보석은 건축자가 사람들의 마음의 터 위에 세우고 있는 건전한 교리를 의미하고, 나무나 풀이나 짚은 잘못된 교리를 의미한다는 해석입니다. (205p)
'예수를 믿고 말씀에 순종한 사람은 상을 받고 영광스러운 구원을 받는다. 그러나 말씀대로 살지 못했더라도 예수님을 믿은 사람은 최소한 부끄러운 구원은 받는다??.' -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이런 종류의 부끄러운 구원은 존재하지않습니다.
왜냐하면 천국은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이 흔히 부끄러운 구원을 받게 된다고 믿는 대상은 사실은 지옥에 가는 사람들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부끄러운 구원이란 용어 자체도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비 성경적인 용어입니다. 물론 심판 날 상 받는 것이 전혀 혹은 거의 없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부끄러움을 느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의 구원을 부끄러운 구원이라고 부르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단순히 상이 많지 않은 사람을 가리켜 부끄러운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지 않고 예수는 믿지만 행함이 없는 사람들이 부끄러운 구원을 받는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잘못입니다. (206~207p)
만약 십자가 우편 강도의 형 집행이 중단되고 그에게 새 삶의 기회가 주어졌다면 그는 결코 과거와 같은 삶을 살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마음이 새로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십자가 우편 강도와는 달리 예수를 믿은지 몇 주, 몇 달, 몇 년 심지어는 수십 년이 지났는 데도 죄를 끊어버리지 않고 여전히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어리석게도 십자가 우편강도가 구원 받았으니 자기도 부끄러운 구원은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두 경우는 분명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우편 강도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부끄러운 구원의 실 예가 아닙니다. (209~210p)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 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고전 5:5) 이 말씀은 결코 육은 멸하고 영은 구원받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211p) 따라서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이 행악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다는 사도의 말이 어떤 육체적인 재난을 당하게 하겠다는 무서운 말이라는데 동의합니다. .....중략....
그러면 바울이 이런 강력한 징계를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분노가 아니라 사랑으로 하여금 죄를 회개하고 돌이키게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5절 말씀은 한 번 믿은 사람은 어떤 죄를 범하든 결국에는 그 영혼만은 구원받게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징계의 목적이 사랑에 있음을 밝혀 주는 것입니다. (213p)
오해하지 마십시오. 이 사람이 건강하게 살다가 병들어죽었다는 이유 때문에 즉 육신을 멸하였다는 이유 때문에 이 사람이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간 것이 아닙니다. 병상에 누워있는 동안 회개할 기회를 갖게 되었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회개하였기 때문에 천국에 간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5장에서 바울이 하고 있는 일도 정확히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히려 이 말씀은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즉 죄를 끊어버리지 않으면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을 근거로 말씀대로 살지 않아도 적어도 부끄러운 구원은 받는다고 믿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중략.........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삶의 목적을 땅에 두고 있습니다. 불신자는 물론 심지어 그리스도인 마저도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순례자여야 합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은혜 받는 일에는 냉담하고 땅의 것만 걸신들린 듯 추구하고 있는 것일까요? 저는 그 원인 중의 하나가 부끄러운 구원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는 다니지만 죄 가운데서 삽니다. 그러면서도 구원은 따놓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안심하고 세상 것을 조금이라도 더 얻고 누려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드린 대로 부끄러운 구원은 없습니다. 제 말은 믿기만 하면 순종하지 않아도 천국에 가는 그런 유형의 구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더 늦기 전에 고집스럽게 집착해왔던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 복종해야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의 목표가 달라져야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전서 5:23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214~216p)
그리스도인은 모두 이기는 자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세상을 이기는 믿음'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 믿음은 세상을 이기는 믿음입니다. 이것은 다음 성경 구절에 잘 나타납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요일 5:4~5)
그것을 바울은 디모데후서 3장에서 '자기'와 '돈'과 '쾌락' 세 가지로 밝혔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은 이기심, 탐심, 그리고 음란을 뜻한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음 구절에 보면 이러한 세상의 의미가 좀더 구체적으로 나옵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생의 자랑이니" (16)
비유를 들자면, 세상은 하나의 나라입니다. 그것은 "흑암의 나라"입니다. 그 나라의 임금은 예수님이 "세상 임금"이라고 불렀던 사단입니다. '세상'이라는 나라에도 그 나라를 지키고 확장하기 위해서 싸우는 용감한 군인들이 있습니다. 세상나라의 육군과 해군과 공군은 바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생의 자랑" 입니다. 그들은 쉼 없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넘어뜨리기 위해 공격합니다. 그러므로 이들 사단의 군대야말로 우리가 싸워서 이겨야 할 세상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싸움의 대상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생의 자랑"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이긴다는 말의 의미는 명백합니다. 그것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생의 자랑을 이기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가 우리를 유혹하고 공격해올 때 거기에 굴복하지 않고 쳐서 쓰러뜨리는 것입니다. (222~223p)
왜냐하면 이 말씀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 생의 자랑을 이기지 못하고 질질 끌려 다니는 사람은 거듭난 사람이 아니며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략........
먼저 윌슨 주교는 "중생의 유일하고도 확실한 증거는 승리"라고 말했습니다. (223p)
그러므로 놀랍게도 서머나 교회의 이기는 자들에게 하신 약속은 단지 지옥에 가지 않게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상급에 대한 약속이 아닙니다. 구원에 대한 약속입니다. 우리는 이것으로부터 매우 중요한 진리를 끌어낼 수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에 다니는 모든 사람이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228p)
보십시오. 여기에 사변적인 믿음이 아니라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거짓 형제들이 두려워하는 이유는 바로 그들의 믿음이 사변적인 믿음에 불과하고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제 한 가지만 더 지적하고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두려워하는 자들"은 지옥에 갑니다. 그런데 단지 지옥에 갈 뿐 아니라 가장 무서운 지옥에 떨어집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알고도 행치 않는 자는 더 많이 맞을 것" (눅 12:47~48)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8절에 나오는 사람 중 알고도 행치 않은 사람은 이들 뿐입니다. 다른 이들은 몰랐습니다. 몰라서 예비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알았습니다. 알면서도 행치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지옥에서 불신자와 우상숭배자와 이단자들의 처지를 부러워하는 신세가 될 것입니다. (235p)
한 영혼이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정확한 순간은 말씀을 듣다가 혹은 기도를 하다가 예수 그리스도가 죄에서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임이 믿어질 때입니다. 이 사실이 단순히 머리로가 아니라 영으로 믿어질 때 입니다. 그때 죄의 결박은 풀려지고 우리는 자유케 됩니다. 할렐루야! (23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