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속의 21세기 한민족 선교 그리고 디아스포라 - 김종필목사
2011.06.15 17:16
* 이 시대 하나님께 쓰임받는 귀한 종, 김종필목사님의 글을 함께 나눕니다.
세계 선교와 마지막 때 우리가 나아야 할 '마지막 추수의 사명'에 대한 큰 그림을 이해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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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의 21세기 한민족 선교 그리고 디아스포라
20세기의 여명에 3분의 2 이상의 기독교인들이 서구 세계에 살고 있었다. 하지만 21세기의 시작에는 3분의 2 이상의 기독교인들이 비서구 세계에 살고 있다. ‘유럽 문명은 기독교,’ ‘기독교는 유럽’이라는 등식이 깨어졌고, 세계 기독교의 중심축은 서구에서 비서구권 이동을 가빠르게 진행된지 오래 되었다.
2000년 교회사의 길고 긴 유럽 중심의 역사가 이제는 불과 100년 사이에 비유럽 또는 비서구권 중심으로 역동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하지만 비서구권 다수 기독교라는 수치에도 불구하고 특히 기독교가 흥왕하는 라틴 아메리카나 사하라 남단 아프리카를 제외하고는 특히 아시아권에서 기독교는 극소수 내지는 소수자로 남아 있다. 아시아에서 가장 기독교 인구 비율이 높은 나라가 필리핀, 한국, 인도네시아, 중국 등으로 손꼽히나 그 많은 기독교인 가운데서도 복음주의 기독교인은 여전히 소수일 뿐이다. 기독교의 중심축 이동 가운데 세계 선교의 선두 주자인 미국을 뒤이어 선교의 역사를 이루고자 하는 한국 교회가 크게는 지구촌 기독교의 실상을 바로 보고, 조금 더 작게는 아시아 대륙 안에서 감당해야 할 선교적 사명에 대한 고찰을 통해 지구촌 복음화를 위한 지혜로운 발걸음을 내딛어야 할 때이다.
1. 21세기 조류 앞에서
21세기를 맞이한 지구촌 곳곳에는 명암이 갈리는 소식들이 들려 온다. 한번도 복음이 증거된 적이 없는 곳에 기독교 복음이 들어 가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들이다. 가장 위험하고 어려운 지역에도 복음이 들어 가게 된 사역에 100여년 수동적 위치에 있던 한국 교회가 이제는 능동적 위치에 서서 적극적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세계 복음화를 향한 선교의 사명은 전략을 짜서 전략데로 전투가 벌어지는 상황이 아닌 그야말로 불확실성 속에 복음의 진리를 전파해야 하는 전면전 상황이다. 서구 열강이 휩쓸고 간 자리에 확연히 남아 있는 식민주의 선교(Colonial Mission)의 잔해 뒤에는 반서구적 정서로 뭉쳐진 후기 식민주의 선교(post-colonial mission)의 역풍이 남아 있다. 리츨의 합리주의 신학의 영향으로 이성주의적 신학이 몰고 간 자리에는 성경의 정경성과 무오성을 송두리채 부인하는 후기근대주의(post-modernism)의 영향을 받은 개인주의적 신학 조류가 서구 신학계에 깊숙히 자리잡고 있다. 계몽주의 이후 잘박힌 못처럼 인본주의(humanism)는 초자연적 하나님의 역사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이름은 사라지고 ‘인간의 이성’과 ‘인간의 자유’가 그 자리를 대체하였다. 도시화, 산업화, 합리화의 큰 조류는 세속화(secularization)의 쓰나미가 되어 각 서구 국가를 덮쳐 버렸다. 서구 교육계의 교재에는 합리주의에 기반을 둔 이성주의(rationalism), 지성주의(intellectualism)와 진화론이 하나님의 말씀과 창조를 버젓이 학교 강단에서부터 부인하고 있다. 여기에 급속히 빠르게 교류하는 정보 산업주의 (Information-technologism)는 개개인이 여과를 하기도 전에, 아니 소화도 하기 전에 홍수처럼 많은 지식과 정보, 그리고 자료와 통계를 쏟아 내고 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다수인들은 여전히 마실 수 있는 진리의 생수를 갈급하나 갈증은 심해져 간다. 여기에 거대한 세속주의 바다 앞에 놓인 사람처럼 우리의 선교가 나아갈 방향과 해야할 당위성이 무언인지를 생각해 보지 않는다면 땅끝까지 복음을 증거하겠다는 우리의 결단은 목적지를 향해 제대로 항해하기도 전에 수많은 난관과 암초 앞에 좌초할지도 모른다.
2. 선교 역사를 통해 본 한국교회
서구 선교를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것은 서구 식민주의 선교이다. 이는 Portugal의 Vasco da Gama가 남아프리카의 Cape Town을 1498년 처음으로 발견한 이후 서구 식민주의 선교가 열렸기 때문이다. 서구 식민지 시대는 이때로부터 1945년 2차 세계대전 종료까지 지리적 팽창과 함께 좋든 나쁘든 피식민지 국민들에 ‘기독교는 서구 열강의 도구’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남겼다. 지리상의 발견 이후에 서구권 식민주의와 팽창주의의 무력과 지배를 통해 종교와 정치가 하나된 정교일치를 통한 집단 개종과 회심이 선교지에서 수행되었다. 종교를 통해 순응적 식민지를 만들고, 정치를 통해 종교가 기생하는 왜곡된 식민주의 선교가 진행된 것이다. 이러한 식민주의 선교는 동인도 회사와 영국국교회의 밀착 지배, 대영제국의 칼날 아래 타교파 내지는 다른 교단 선교부를 들이지 않는 실례들이 결코 적지 않았다. 천주교 선교를 가장 식민주의 선교의 도구로 사용한 나라는 역시 스페인과 포루투갈이지만 프랑스도 이점에 있어서는 결코 면죄부를 받기 어렵다.
이런 식민주의 선교의 대세 가운데 일어난 선교가 바로 근대선교의아버지라부를수있었던1792년 윌리암 캐리 (Wiiliam Carey)가 주도한 근대 선교(modern mission)운동이다. 이는 같은 시기에 일어난 부흥운동과 함께 함으로 복음주의적이고 부흥적인 해외 선교가 가능했던 혁신적인 선교운동이다. 이는 식민주의 선교와 사실은 맥락을 같이 하지는 않으나 시기적으로는 식민주의가 한참 기승을 부리던 기간이다. 1792년 William Carey(1761‐1834)가 인도를 향해 시작한 근대 선교는 역사의 좌표를 바꾸는 역사임에는 틀림없다. 이는 유럽의 복음주의 근대 선교의 기본 원칙들 가운데 회심, 성결, 교제와 증인 가운데 바로 증인의 삶을 사는 것이 자국민 뿐 아니라 복음의 영향권이 미치지 않는 곳까지 우리는 가야한다는 초청에 부응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근대 선교는 처음에는 해안 선교(1792‐1910)를 유럽 교단을 중심으로 몇개 국가에 집중함으로 이루어졌다. 그러기에 지구를 펴 놓고 보면 유럽의 각국가 특별히 몇개 나라에 선교를 집중한 것을 볼 수 있다. 배를 타고 해안가에 정착하여 해안선을 따라 내륙으로 들어 가는 지정학적 선교를 감당했던 것이다. 윌리엄 캐리를 필두로 근대선교는 각 국가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미국 교회가 가장 자랑스러워 하는 모리슨(Robert Morrison)은 중국 남부로 (1809)가 선교의 교두보를 쌓았다. 테일러(Judson Taylor)는 중국 대륙으로 (1865)으로 들어 중국 내지 선교회(China Inland Mission)를 세웠고 후에 이 선교회OMF로 발전한다. 인도로 갔던 저드슨(Adoniram Judson)선교사는 버마로(1813)로 건너가 버마의 등불이 되었고 그들 말로 된 성경을 직접 번역하였다. 아프리카의 부흥의 예견했던 리빙스턴(Divid Livingston)은 아프리카로 (1841)로 건너가 아프리카 횡단을 통해 복음화의 roadmap 을 그려냈다. 이러한 근대 선교의 흐름은 라틴 아메리카, 카리브해와 온 세계에 전파되었다. 근대 선교는 크게는 식민주의 선교 안에 포함되지만 19세기 말에 진행된 허드슨 테일러의 내지 선교는 교회 개척을 통한 직접 선교 즉 항만을 중심으로 외교구락부 선교가 아닌 바로 현지인에게 복음을 증거하였던 개척 선교(1865)의 시작이었고 이 개척 선교는 식민주의 선교가 끝난 뒤에도 그 명맥을 1980년까지 이어갔다. 테일러의 중국 내지 선교회(China Inland Mission)은 아프리카 심장 선교회(Heart of Africa Mission)으로 후에 WEC으로 개명되었고, 아프리카를 지칭하는 것과 동일했던 수단 선교회(Sudan Inland Mission)고 개척 선교의 큰 흐름에는 대동소이하였다. 식민주 당국에 아부하며 유럽인 대상으로 교회를 했던 식민주의 선교의 일면은 개척 선교에서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이들은 현지인화 전략을 운영하였고 또한 현지 문화를 존중하는 문화전략 선교를 감당하였다.
근대 선교의 꽃봉우리 가운데 피어났던 개척 선교 가운데 우리가 가장 눈여겨 보아야 할 대목은 당시의 선교사로 나간 사람들의 대부분이 복음주의 부흥운동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이는 미국의 제1차 해외 선교 운동과 무디의 해외선교자원 운동에 이르는 19세기 전반에 흐르는 복음주의 부흥의 뿌리와 연관이 깊다는 점이다. 부흥운동과 해외 선교는 이처럼 불가분리의 관계를 갖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근대선교도 크게 그리고 길게 보면 식민주의 선교의 큰 흐름의 일부분의 기간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근대 선교가 꽃을 피우고 20세기로 건너 오면 1910년 에딘버러 선교대회를 통해 지구촌 복음화를 당시 시대에 이루자고 천명하지만 인류는 얼마되지 않아 가장 참혹한 2차에 걸친 세계 대전을 맞게 된다. 크게 보면 기독교 진영이 기독교 진영을 향해 총부리를 겨루었던 세계대전은 참혹한 기독교 쇠퇴의 후속타를 맞게 되고 길고 길기만 했던 식민지주의는 그 종말을 고하게 된다. 세계대전이후급속히감퇴한서구교회는본국선교부들을불러들이기시작하고급기야선교모라토리옴즉선교지불유예선언을하고만다. 20세기에 들어와 두번에 걸친 세계대전과 전쟁 이후 다시는 일어나지 않은 대부흥의 결과로, 지속적인 쇠퇴의 곡선을 긋게 된 서구교회는더이상해외선교에있어서도주도적인역할을감당하지못하게되었다. 이 즈음에 새로운 선교의 주자로 1980년 대부터 두각을 나타낸 나라가 있었으니 바로 한국이요 또한 한국교회였다.
3. 미전도 종족 선교의 한 가운데 서 있는 한국 교회
지리상의 관점에서 보면 교회가 없는 지역,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지역에 관심을 갖게 되지만, 그 지역에 대한 세밀한 조사를 진행해 보면 매우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타운젠드 (William Cameron Townsend, 1896‐1982)는 바로 이점에 착안하여 지구상의 모든 종족을 언어학적그룹(ethnic linguistic group)으로 나누었다. 그는 이 언어학적 그룹의 발전을 조사하고 사역하기 위해 SIM(Summer Institute of Linguistics‐193)와 위클리프 성경번역 선교회 (WBT: the Wycliffe Bible Translators‐1942년, JAARS‐1948년)의 설립을 통해 종족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는 사역을 시작하였다. 선교 개념의 대단한 변화가 아닐 수 없었다. 성경을 그들의 언어로 듣게 하는 것은 언어적 문제 뿐 아니라 문화의 해석과 상황화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20세기말 선교에 새롭게 등장한 것이 미전도 종족 선교이다. 1982년 3월 시카고에서 미전도 종족 선교 회의가 개최되어 “미전도 종족이란 자신의 종족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크리스챤의 자생적 공동체가 없는 종족집단”이라는 선언이 있게 된다. 언어 구분에서 인종 구분으로 발전해 가게 된 것이다.
고Ralph Winter 박사가 세운 세계 선교 센터(World Mission Center) 의 2010년 보고에 따르면 전세계종족은 24,300여개로 나와 있다. 이들 중 복음이 전파된 종족은 16,000 여 개에 달하며 그 인구는 대략 40억에 달한다. 40억이라는 인구는 복음화가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의 삶 가운데 그 지역에서 적어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접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복음을접하기어려운미전도종족은 8000여개 종족으로 집계되었고 그 인구는 무려 27억으로 전세계 인구의 40%를 점유하고있다. 이들 중에서도 단 한번도 복음을 듣지 않은 종족은 현재 3300 여개에 이른 것으로 집계된다. 이 3300개 종족은 언어 구분으로 할 때에 4000개의 언어 그룹이 된다. 이들을 계수하면 약 4억의 인구(약 4,000종족: 약 3,000언어)가 되며 이를 선교학계에서는 ‘미 대상지역 종족(untargeted people)'이라고 부른다. 미대상지역 종족과 더불어 미전도 종족 8000개에 대한 구분을 통해 복음 전파의 가능성을 알수 있다. 미전도 종족에 대한 상태를 상세히 조사해 보면 토착 교회가 존재하지 않거나 또는 그에 준하는 사역이 없는 그룹으로서 지구촌 전체 선교사의 10% 만이 이들 종족 사역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24,300여개 종족 가운데 기독교인으로 구성된 종족은 10,000여개로 집계되었고, 이슬람을 믿는 모슬렘 종족은 4100 여 개, 민속종교(Folk Religion)를 믿는 종족은 모슬렘 종족과 비슷한 숫자인 4000여개, 그리고 힌두교를 믿는 종족이 3400여개 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를 다시 말하면 세계에 가장 복음화가 안된 종족은 모슬렘, 민속종교와 힌두교를 믿는 사람들인 셈이다. 그리고 10억에 달하는 불교도들이 그 다음 순위를 차지한다. 이러한 미전도 종족의 실태를 보면 지구촌 선교가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지 명약관화해진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선교가 기독교 지역이 아닌 이슬람권, 힌두권, 민속 종교권 그리고 불교권에 집중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전세계 선교사들의 분포도를 보면 이상적 선교 분포와는 거리가 멀다. 세계 전체 복음주의선교사들중 90%가 미전도 종족 지역이 아닌 이미 복음이 전파된 지역에서 사역하고 있다. 지구촌 전체 선교사의 73%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종족 가운데 사역하고 있다는뜻이기도하다. 가장 복음이 들어 가기 힘든 지역에 접근 가능하도록 문이 열린 디아스포라를 통한 선교는 우리 시대의 가장 놀라운 사역이다.
4. 한민족 디아스포라 선교
세계 140개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한민족 디아스포라는 선교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남북한이 이념으로 둘로 나뉘어져 있다면 다른 나라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은 또 하나의 Korean 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통점은 한국 교회의 선교 역사를 통해 면면히 흐르고 있는 청교도의 영성, 경건주의의 이상, 미국 대각성 운동의 흐름등이다. 한국에 온 수많은 선교사들은 이러한 흐름에 있어서 동질성을 공유하였다. 그 중에서 무디(D L Moody) 와 함께 스피어 (Robert Speer), 존 모트(John Mott), 토레이 (Ruben Torrey), 피어슨(Arthur Pierson) 등이 함께 한 노스필드 성경 사경회(Northfield Bible Conference)를 통해 파송되었던 학생 해외 선교 자원 운동(Student Volunteer Mission for Foreign Mission)이다. 무디와 함께 사역했던 이들은 직간접적으로 한국교회에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한국 교회 초기의 영성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1910년 에딘버러 선교대회를 이끌었던 존 모트는 한국을 세번이나 방문한바 있다.
그는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을 목격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그는 말하기를 “20세기 안에 한국은 동양의 기독교 수도가 될 것이다 (Within this century, Korea will become the capital of Christianity in the Orient)”라고 했다. 선교사들이 입국한지 22년이 지난 당시에 한민족과 한국 교회를 바라보며 예견한 존 모트의 말이 실현되기까지 한민족은 기막힌 수난의 역사를 겪으며 미래를 향한 디아스포라들의 행진이 뒤를 따랐다.
한민족은 만주, 연해주로, 일본으로, 태평양으로, 카리브해안으로 흩어지게 된다.
일제 강점기에 흩어지게 된 한민족은 그 형편과 지역에 따라 다르게 불리워졌다. 태평양을 건너 간 디아스포라들에게 해외 동포 또는 해외 거주자라고 불렀다. 하지만 중국이나 러시아 연해주로 건너 간 사람들과 일본에 거주하는 재외 한국인들에겐 교포(僑胞)라는 단어가 친숙하다. 한때 중국 교포들을 화교(華僑)라고 부른 것처럼 한교(韓僑)라고 부르기도 하였고, 이에 반해 북한에서 나간 교포를 조교(朝僑) 즉 조선동포(북한을 통칭 북조선이라고 부를 때)라 부르기도 하였다.
이런 맥락은 같은 민족이라는 의미로 해외나 다른 나라에 거주하는 한민족을 동포(同胞)라고 부른다. 만주의 황량한 벌판에 한민족은 이미 큰 군락을 이루며 살게 되었다. 벌목공으로 시베리아 숲으로 간 한민족에게 그 땅은 조선시대 유형지와 비교할 수 없는 동토의 땅이었다. 이제 더 이상 육로가 아닌 바다 건너 태평양 하와이 섬으로 한 민족이 흩어지게 되는 1902년 12월 22일 조선반도(한반도)를 격전장으로 사용하는 열강들의 틈바구니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대한제국 미대사는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 필요한 노동력 갹출을 고종황에게 청원하였고, 이를 허락한 고종 황제의 어명에 따라 한민족으로 121명이 이민선 “켄카이”호를 타고 떠나게 된다. 고베항에 도착한 저들은 다시 신체 검사를 받고 20명이 탈락해 남자만 55명. 여자는 21명, 그리고 어린이 25명 모두 101명이 이민선 “게릭”호를 타고 간 곳이 하와이 호놀루루이며 그들이 도착한 날은 1903년 1월 13일이다. 이들중 신체 검사 가운데 안질을 앓던 15명은 다시 고국으로 돌아 와야 했다. 마치 모라비안 교도처럼, 메이플라우어호의 청교도처럼 당시 떠나는 배 안에 제물포(당시 인천 이름)의 내리 감리교회 교인들 50명이 있었는데 이들이 배안에서 기도회를 인도하고 성경공부를 하게 됨으로 하와이 호놀루루에 배가 안착할 때에는 감리교인 무려 58명에 달했다고 한다. 이후로 약 3년에 걸쳐 모두 7,400명에 달하는 한민족이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이주해 온다. 미국 대륙 철도에 동원된 많은 인력은 중국인이다. 그런데 하와이 노동자 가운데 2,000명은 캘리포니아 철도 공사 건설 노동자로 다시 미 대륙으로 건너 오게 된다.
고종 황제의 어명으로 하와이로 노동자들이 떠난 지 불과 2년 4개월이 조금 지난 1905년 4월 4일 1,033명의 조선인이 영국 상선 일포드호를 타고 멕시코 유카탄 지역의 에네켄 농장에서 4년 계약의 노동자로 입국한 곳이 바로 멕시코이다. 격동의 역사 가운데 조선은 나랏님도 빼앗기고, 주권도 빼앗긴 채 일본에 합병되고 만다. 이때 나라를 잃은 설움은 한반도에 있는 한민족만이 아니다. 계약 노동자로 먼 길을 떠났던 조선인들이다. 하와이는 그나만 나은 형편이지만 멕시코에서 무국적자가 된 그들은 일부는 멕시코에 남고 또 나머지는 쿠바로 떠나는 유랑자가 된다. 디아스포라는 흩어지지만 어찌 보면 국적없이 떠도는 유랑객인 셈이다. 그 이후 멕시코에 남은 한인 후예는 이미 6세대에 이르고 있으며, 그 후손은 3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미년 3.1 운동 당시의 인구는 조선인(한국인)의 인구 2천만 정도였다. 그런데 한반도의 전인구의 3분의 1이 해외로 흩어지고 나중에는 절반 정도가 디아스포라가 된다. 일본의 강점기에 자발적으로 한국인들은 만주로 그리고 사할린으로 이주하였다. 1931년 만주 사변, 1937년 중일 전쟁 그리고 1941년 태평양 전쟁시에 일본은 한국인들을 강제 징용하고 또한 노동력을 각출하였다. 1939년부터 1945년까지 강제 연행된 인원은 71만4천787명에 달하였다. 게다가 강제 징용된 조선인 군인과 군속은 36만5천263명에 이르렀기에 실제 해외로 끌려간 조선인은 일백9만명을 넘는다. 일제 강점기에 시베리아 벌목공으로만 끌려 간 사람이 50만명에 이르렀고 이들이 중국에 정착하여 오늘의 조선족이 된다. 이를 만약에 중국과 소련 그리고 일본에 간 한국인(조선인)을 모두 포함하면 본국 인구의 절반이 해외동포였다. 스탈린의 강제 이주로 중앙 아시아로 끌려간 조선인 뿐 아니라 이민으로 하와이, 쿠바와 멕시코, 미국과 남미 각지로 흩어진 우리 민족의 디아스포라는 고난의 역사를 갖고 있다.
한민족 디아스포라는 서구 선교사들의 조선 입국 이전부터, 그리고 선교사들의 초기 사역에, 더 나아가서 일제 강점기에 지대한 역할을 하였다. 서구 개신교 선교사들이 조선 땅에 선교 하기 전에 많은 조선인들이 중국 동북부의 영구(營口)와 우장(牛壯)과 고려문(高麗門)과 서간도(西間島) 지역에 흩어져 살게 된다. 스코틀랜드 선교사 존 로스 선교사가 만나게 된 조선인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존 로스를 도와 성경을 번역하는 일에 동참하였고 권서인(勸書人, Colporteur )으로 조선 선교가 시작되기 전에 성경을 배포하였다. 1882년 수신사 박영효와 함께 일본에 머물던 이수정이 1883년 미국인 선교사 녹스(G. W. Knox)와 함께 마가복음을번역하였다. 마가복음은 6천부 출판되었고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1885년 4월 5일 제물포로 가지고 온 것이다. 최초로 한국인 세례가 이루어진 것은 서간도의 집안(輯安)으로 고구려의 옛수도이기도 한 지역인데 이는 아펜젤러나 언더우드 입국보다 무려 7년 또는 8년을 앞서서 이루어진 것이다. 조선 땅에 최초로 세워진 소래 교회 보다 앞선 것이 바로 집안의 이양자(李養子)라는 마을에서 세워졌다. 한국에 선교사들이 들어 오기 전에 이루저진 왕성한 선교 활동은 중국 동북 3성 즉 길림성, 요령성과 흑룡강성 그리고 연해주와 일본등으로 주로 1874년부터 1911년까지이다. 조동진 박사의 보고에 따르면 이 기간에 중국 동북 3성의 평신도 자비량 전도인이 이미 100명을 넘어섰고 만주 땅에 세운 교회는 200교회가 넘는다고 보고 하였다.조동진 박사는 사무엘 모펫(Samuel A. Moffett)이 1910 에딘버러 선교 대회에서 한 보고를 인용하면서 한국은 이미 한국인에 복음을 스스로 자립 선교를 한 점을 지적하고 한국 교회가 한반도 뿐 아니라 다이아스포 중국과 연해주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자립 선교를 한 점을 지적하고 있다.
5. 한민족 디아스포라 선교의 영역
설움과 고난의 현장을 걸어 온 한민족이 세계에 흩어져서 디아스포라가 되어 뿌리 없는 민족으로 남는가 했는데 21세기를 가늠하는 중요한 시점에 선교의 보배로 떠오르고 있다. 한세기 넘게 흩어졌던 한민족은 세계 각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선교 전략지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배치되어 있는 것이다.
10/40창의 가장 열악한 비복음화 지역인 중국, 중앙아시아, 그리고 일본과 같은 곳에 신앙의 올곳은 뿌리를 이어온 한민족이 이제는 유랑객, 거류민, 이민자의 딱지를 떼고 중요한 직업을 갖고 살고 있다. 이제 우리는 디아스포라가 갖고 있는 일터(workplace)를 선교의 전략으로 사용할 때가 되었다. 하나님의 나라는 공간적 개념 뿐 아니라 시간적 개념도 공유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영역(all spheres)을 다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의 개념에서 교회를 본다면 교회는 단지 주일만 드려지는 예배의 처소가 아니라 매일 매일 영역에서 드려지는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야만 한다. 청교도들은 매일 매일 삶 속에 실천되는 직업을 통한 하나님의 거룩을 매우 중요한 가치로 여겼다. 경건주의자들은 “경건에 이르는 삶”은 직업을 통한 일터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거룩의 과정으로 보았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종교 개혁이후 직업을 통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의 개념이 사라지고 단지 주일 하루만 드려지는 주일 신자(Sunday Churchgoer)의 개념이 우리 가운데 자리잡고 말았다. 직업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의 도구일 뿐 아니라 진정한 거룩을 이루는 매우 중요한 수단이자 도구이기 때문이다. 세계에 흩어진 디아스포라의 직업 전선에서 그들의 삶의 현장에서 전해지는 복음이 활성화된다면 굳이 수십만의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보다도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디아스포라 한인들이 선교의 주체가 되도록 힘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일터는 직업의 전선이라면 장터는 직업과 관련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영역이다.
로잔 운동 가운데 투네학(Mats Tunehag)는 비즈니스 선교(Business As Mission)에 관한 많은 토의 가운데 도출한 내용 중 예수 그리스도께서 장터 사역과 관련된 많은 실재들에 대해 유사한 부분을 언급하였다. 이는 예수님께서 건축(마 &;24-27), 포도주 제조(눅 5:37-38), 농사(막 4:2-20), 보화를 찾는 일(마 13:44), 목양(마 18:12-14), 경영과 노동(마 20:1-16), 가족과 사업(마 21:28-31), 강압적 쟁취(눅 20:9-19), 투자 재창출(마 25:14-30), 미래 시장(눅 12:16-21), 농사 기법(막 13:27-32), 경영의 영역(눅 12:35-48), 관찰과 조사의 필요(눅 14:24-35), 돈의 잘못된 사용과 파산(눅 14:24-35), 차입 자본의 이점(눅 16:1-13), 그리고 고위험 벤처 투자(눅 19:11-17)와 같은 부분이다.
로잔 운동은 이와 더불어 장터 사역(Marketplace Ministry)에 대한 총괄적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리우(Timothy Liu), 프리스(Gordon Preece) 그리고 리(Wong Siew Li)가 발표한 내용에는 교회와 장터와의 관계 그리고 장터 사역이 선교로 연결되는 부분에 대한 포괄적 연구 토의를 담고 있다.Business 와 장터는 일터(workplace)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2010년 10월 개최된 제3차 로잔대회에서 윌리 카티우가(Willy Katiuga)는 그의 발제를 통해 “일터는 복음을 체화시키는 이상적인 장소 (the workplace is the ideal setting for ‘embodying the gospel)”라 하였다.이러한 관점은 전문직업 영역에서 Business 가 주일 예배의 연장이 아닌 하나님의 확장을 위한 변화와 거룩을 위한 실천의 장소임이 저변에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런 관점에서 돈을 버는 행위, 헌금과 기부 행위를 위한 Business 와 직업의 개념이 아닌, 우리에게 주신 직업과 사업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시고 사용하시려는 거룩한 신적부름(Divine Calling)임을인식하게되고 이는 직업과 사업을 통한 우리의 삶이 창조(창2:15)부터 우리의 일(avodah)을 통해 섬김과 예배를 나타내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인정하게 된다.이는 하나님의 통치가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확대되고 일어남을 말씀해 준다. (고전 15:45-47) 일반 대학에서 MBA 나 최고 경영자 학교를 통해 비즈니스 리더들을 배출 하듯 이제는 교회와 선교 단체에서 Kingdom Integrity 를 통한 Christian Business leader 의 배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사업과 예배, 직업과 전도, 일터와 교회의 조화와 협력은 주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가장 큰 도구임은 재차 강조하여도 지나침이 없다. 만인제사장직의 적합한 적용이자 실천으로Business 영역에 속한 사람들이 세상의 영역에서 하나님 나라의 공의와 거룩을 나타내는 동역자요 또한 왕같은 다스림과 제사장적 중보의 기능을 감당해야 한다.
21세기 선교에 있어서 비즈니스 리더 중에서도 디아스포라 비즈니스맨은 선교의 주도적 중심에 서 있다. 비즈니스를 통해 교육, 무역, 정치, 의료, 사회 복지와 선교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영역에 선교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20세기가 시작한 지구에는 14억의 인구가 있었으나 20세기를 마감할 때에는 그 인구 62억에 달하게 된다. 이중 46억의 인구가 경제적으로 미개발 상태에 있고, 앞으로 30년 동안 98 퍼센트의 인구 성장이 미개발 지역에서 일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2009년 유엔 본부 개발계획(United Nations Development Programme, UNDP) 인구 조사에 따르면 자신의 국가가 아닌 타국가에 거주하고 있는 이민자들이 벌써 2억에 달하고 있으며 이는 전 세계 인구의 3%를 차지한다. 전세계 이민자의 숫자는 지난 30년간 꾸준히 증가 추세를 보여 왔다. 1999/2000년 에 조사된 유엔 본부 산하 고등판무관(United Nations High Commissioner for Refugees, 이하UNHCR) 통계 보고에 따르면 이들 이민자 중 최소한 합법적 이민자가 1억명에 달하고 난민들만 6천 1백만에 달하고 있다고 한다. 2009년 유엔 본부 개발계획의 보고처럼 1세대 이민자만 계수하면 2억에 달하지만 그 외의 수치를 더하면 엄청나다. 프랑스, 독일, 영국과 같은 유럽, 미국과 캐나다의 북미 지역 그리고 남아공과 오세아니아에 있는 이민 2세대, 3세대를 모두 통계치에 포함시키면 지구촌 인구 7명 당 한 명이 이주자들이 된다. 만약 선진국에 있는 이민자만을 계수한다면 인구 10명당 한명이 이미 이주자(이민 2세대와 3세대를 제외한)들이다. 2002년 통계에 따르면 선진국 출생자 가운데 18퍼센트가 이민자 자녀이며 출생률 가운데서 이민자의 공헌(?)이 3분의 2를 점유하고 있다.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이민을 했던 인구가 모두 15퍼센트의 세계 인구를 점하고 있지만 이들은 저 발개발국가 GDP 의 60 퍼센트를 점유하고 있다.
이들이 다른 지역에 살게 된 계기도 다양하고 그들을 구분하는 양태도 또한 다르다. 우선 단순 이주자로부터, 거류민, 이민자, 난민, 해외 거주자 등으로 부르고 있다. 이러한 사람들을 단순한 이주민으로 보지 않고 성경적 관점에서 보면 흩어진 자들이라는 의미를 가진 Diaspora 들이다.
2010년 1월에 발표한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통계에 의하면 한국교회 파송 선교사 수는 22,130명(이중 파송 선교사 2,579명 포함)에 이르고, 목회자 선교사는 14,697명, 평신도 전문인 선교사는 7,433명으로 발표되었다. 1998년 목회자 선교사가 4,751명, 평신도 전문인 선교사가 3,456명인 것과 비교하면 전문인 선교사가 2배 증가하는 동안 목회자 선교사는 3배 가량 증가한 것이다. 이제는 해외에 있는 다이스포라 사역자들이 급증해야 하는 당위성이 요청된다.
한국인 대비 재외동포(이민자) 비율로는 우리나라가 단연 독보적이다. 13억이 넘는 중국인 가운데 1억의 화교가, 그리고 다인종으로 구성된 인도계가 무려 5천만, 그리고 천 백만이 넘는 필리핀 해외 거주자 다음으로 한국인 디아스포라는 전세계 7백 5십만에 달한다. 오랜 역사를 가진 중국의 경우만 해도 화교들은 각국가별로 대륙별로 뛰어난 네트웤을 구성하여 서로에게 유익을 주고 있다. 화교들의 상장기업 중 태국은 81%, 싱가포르 81%, 인도네시아 73%, 말레이시아가 61%, 필리핀이 50% 등 넘어서고 있다. 만약 전세계 화교들의 자산은 추정하면 2-3조 달러에 달하며 이는 세계 3위 경제력 규모에 이른다.
2009년도 외교통상부가 발표한 한국인 재외동포는 682만 2천 606명으로 집계되었다. 2007년에도는 이보다 22만2천110명이 많은 704만4천716명이었다. 재외 동포 가운데 가장 큰 인구는 중국으로 2007년에는 276만2천160명이었으나 2009년에 233만6천771명으로 집계되었다. 그 이유는 32만4천여명의 조선족이 다른 나라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2009년 통계로 중국 다음으로 큰 재외동포(디아스포라 한국인)가 미국에만 234만2천634명에 달하고 그 다음으로 일본이 91만2천655명으로 나타난다. 여기에 구소련권, 유럽 그리고 중동과 기타 국가에 디아스포라가 흩어져서 살고 있다. 만약 단기 내지는 단기 거주하시는 분들까지 포함시키면 최소한 750만에서 850만의 디아스포라 한국인이 거주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
2003년 외교통상부 자료에 따르면 아시아 51.1%, 미주에 38.4%, 그리고 유럽에 10.3%으로 99.8%의 재외동포가 3개 대륙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 보면, 재외동포는 모두 151개국에 거주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총 인구 대비로 하면 무려 12.7%에 달하는 이는 유대인 다음으로 두번째 많은 숫자이다. 그러나 단순히 인구만을 따지면 중국 화교, 인도인(인종이 너무 다양해 통계 조사에 따라 다르게 분류될 수 있음), 이탈리아인(이 경유도 귀화한 경우 수치가 달라질 수 있음), 유대인(마찬가지로 미국인 또는 그 지역 사람으로 구분될 경우 달라짐)에 다음에 많다. 해외 노동자가 1천1백만에 달하는 필리핀인을 포함하면 순위가 또 달라진다. 2003년 통계에 따르면 재외동포의 자산규모가 국내 총생산의 4분의 1에 달하고 액수로는 한국의 4800억 달러와 비교하여 1200억 달러에 달한다.
한인 디아스포라는 선교적 잠재력이 큰 지역에 몰려 있어서 선교 동원과 지역 선교 그리고 열방 선교가 가능하다. 이미 디아스포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을 선교 동원하고 동력화하는 사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재외동포 가운데 10-20% 만 동원하여도 60만에 120만을 헤아리는 선교 동원이 가능하게 된다. 타문화 적응도 이미 된 상태에서 대부분의 디아스포라가 고급 인력이 많이 있고 그 지역 문화 접촉 뿐 아니라 비자와 재정적 후원이 필요하지 않으며 소수자(minority) 그룹으로 겪은 체험들이 복음의 효과적 접근과 관통성에 유리한 면으로 작용한다. 이미 그 지역의 문화와 언어 그리고 타인종과 더불어 살면서 타문화 적응이 아닌 타문화 삶속에 있는 디아스포라 한인은 선교사적 훈련을 이미 받은 것이나 진배없으며 한인 그리스도인들을 선교의 자원으로 사용하면 그 힘은 놀라울 것이다.
6. 창의적 디아스포라 사역을 위한 12가지 제언
역사적으로 바라 본 디아스포라의 모습은 다양하나 본질은 복음 전도에 있다. 이제 이미 땅끝에 나가 있는 디아스포라를 통해 모든 이에게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디아스포라 선교 자원과 동원은 인류를 그리스도 예수께 인도하기 위한 가장 큰 선교적 유산이라 할 수 있다. 디아스포라 사역의 영역은 이제 한두가지 아님을 볼 수 있다. 교회 개척, 문화 사역, 선교 네트웤, 2세 사역, 현지인 목회, 비즈니스 선교 등 매우 다양하다. 한인 목회의 경우 한인 대상으로 다인종 사역으로 나가는 경우 그 지역이 선교지가 된다. 디아스포라를 동원하기 위해서 다양한 부분의 전문 영역과 일꾼 세우기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현지에서의 직업을 통한 선교 사역 그리고 제자 양육을 통한 사역자 양성등이다. 한 사람이 세속 사회에서 일하는 직업의 영역과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사역자로서의 역할에서 우리는 상황화의 필요성을 본다.
2010년 제3차 로잔 대회의 가장 주목받는 분야는 역시 디아스포라 선교였다. 2차 로잔대회에서는 미전도 종족에 대한 집중 조명을 받은 바와 같이 3차 대회에서는 물론 많은 영역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디아스포라 선교는 모든 이들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언어, 문화, 재정, 사회 진출에 있어서 선교 사역을 바로 감당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디아스포라는 직업 선교, 자비량 선교, 비즈니스 선교와 문화 선교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조건을 구비하고 있다. 여기에 외국인에게 매우 불편할 수 밖에 없는 비자도 필요없다. 이중 문화(biculture) 구조에서 그 나라와 모국 문화(부모 세대를 통해)를 두루 섭렵하고 있기에 양쪽 문화의 교량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디아스포라는 그들이 살고 있는 나라에서는 Minority 에 해당하기에 소수자들과 공감할 수 있는 영역이 많이 있다. 한국인 특유의 열정으로 대부분의 디아스포라는 현지에서 교육과 사업 그리고 문화적인 부분에서 높은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제 디아스포라를 통한 선교 사역 12가지를 다음과 같이 제언하고자 한다.
1. 디아스포라는 21세기 선교와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전략적 선교의 중심에 있다.
2. 각 지역과 계층과 공동체 그리고 대륙간, 세대간 네트웤은 디아스포라 네트웤 구축을 통해 글로벌 리더쉽을 가능하게 하는 선교 네트웤으로 활용된다. 네트웤을 위한 네트웤가 아닌 선교와 재정 그리고 인적 자원과 정보까지 공유하는 종합적 디아스포라 네트웤 구성이 필요하다.
3. 흩어져 있는 디아스포라를 방치하기 보다는 이제 숨겨진 리더를 찾아 지도자로 세워 나가는 것이 가장 빠른 선교 사역을 감당할 수 있다. 미전도 종족 선교와 복음의 창의적 선교 접근이 어려운 지역에 합법적 토대아래 직접 그리고 간접 선교를 병행하는 가장 유리한 위치를 점유하기 때문이다.
4. 종교적 상황이 결코 쉽지 않은 지역에서 절박한 영적 상황에 놓인 디아스포라를 위한 모국 교회의 중보 기도 네크웤 구성과 함께 연대가 필요하다. 그럼으로 함께 기도하는 중보 기도 네트웤과 기도 편지 나누기 그리고 서로를 위한 보호의 기도를 드리는 기도 연합이 매우 중요하다.
5. 디아스포라가 커버하는 직업에는 한계가 없을 정도이다. 제조업으로부터 시작하여 무역, 금융, 부동산, 도매업, 소매업, 투자와 경영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런 영역에서 선교를 위한 지역 사회 개발, 기업 이익을 빈곤퇴치, 질병퇴치, 예방 활동, 문화 사역등을 병행하면서 복음 전파를 위한 선교의 창의적 접근으로소 간접 선교가 매우 효과적이다.
6. 세대간 선교는 1세대, 2세대 그리고 3세대에 이르는 동원과 각 세대에 따르는 효과적인 동원 전략이 필요하다. 이민 세대는 이미 타문화 적응과 가치관 차이에 대한 다양한 각국의 필요와 상황에 각 세대별로 맞게 적응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이에 지속적인 젊은 실업인을 양육하고 또한 차세대 리더를 선발 훈련하는 세대간 디아스포라 리더쉽 훈련은 매우 중요하다.
7. 디아스포라가 가지고 있는 물적, 인적 자원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매우 긴요한 수단이 된다. 그럼으로 디아스포라의 자원과 선교를 효과적으로 조화롭게 사용한 청교도, 독일의 모라비안 선교회, 영국 해외 복음전파회(Society for the Propagation of the Gospel in Foreign Parts)와 바젤 선교회을 서로 비교 분석하여, 자비량 선교, 직업 선교, 비즈니스 선교 그리고 선교 공동체 구성에 이르기까지 우리 시대에 맞는 상황화가 필요하다.
8. 해외 정보의 공유는 곧 선교 정보의 자원이 된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가장 빠른 상업의 정보를 회당에서 나누었고, 모든 비즈니스 시간에 하루 세번 기도 시간을 빠지지 않고 지킴으로 당시에 가장 놀라운 복음 전파의 영적 도구가 될 수 있었다. 선교와 교회 그리고 기도 공동체를 중심으로 각자 비즈니스 리더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정확한 연구 조사와 비즈니스 정보가 선교 정보로 연결되도록 정기적 만남과 성경 공부가 매우 중요하다. 정보의 나눔은 자원의 낭비를 예방하고 불필요한 중복 투자를 막아 준다.
9. 실현 가능한 협력 선교(teamwork mission)가 디아스포라 비즈니스를 통해 일어날 수 있다. 디아스포라의 사역자들은 자신이 있는 자리에 기능별로 사역할 수 있다. 예를들면 직원들에 대한 성경 공부, 마을 또는 직장 공동체에 베푸는 간접적인 기독교 문화를 통한 선교, 기업 이익의 환원을 통한 복음 전파를 위해 목회자, 비즈니스 리더 그리고 현지인이 하나 되는 팀웍 선교가 가능하게 된다.
10. 롤 모델(Role Model) 세우기를 위한 사역을 통해 배가되는 디아스포라 선교가 가능하다. 이미 해외 각국에 뛰어난 활동을 하고 있는 디아스포라 선교 사례들을 수집하여 영상과 책자 그리고 자료집으로 출간하여 교육과 훈련 그리고 세미나와 회의를 통해 나누면 세계 각처의 디아스포라 선교를 통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 가속화될 것이다.
11. 디아스포라 리더 하나가 하나님 나라 선교의 일원으로 사용되는 것이 왕과 제사장 같은 부름을 받은 성도 하나 하나를 세워 거룩하고 정결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게 하는 길이요 또한 복음의 진리를 말씀을 각자에게 실천하게 하는 도구가 된다.
12. 한류의 붐을 통해 문화 컨텐츠, 한국 문화 소개, 한글 보급, 그리고 IT 관련 문화 선교를 장기선교가 가능한 NGO 와 NFO 와 같은 비영리 단체들을 통해 사회 봉사 사역을 감당한다면 디아스포라 선교의 복음 전파는 극대화 될 것이다.
마치는 말
이제 마지막 남은 미전도 종족 선교나 10/40 창 지역 선교 그리고 미접촉 지역 선교도 디아스포라를 통한 합법적 선교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고 있다. 디아스포라는 합법적 Visa 취득도 필요하지 않다.
이러한 디아스포라를 전 지구적으로 네크웤화를 하면 전세계에 국경의 제한 없이 선교의 연합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복음주의 진영의 디아스포라 영역에 대한 선교적 접근은 로잔대회 분과 토의와 복음주의 진영의 일부 선교단체들의 연구와 조사에 의해 더욱 더 그 중요성과 효과에 대한 천명과 방침이 선언되어 이제 세계 교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가장 중요한 나라에 가장 중요한 지위를 주셔서 세계 선교를 마무리하게 하시는 한인 디아스포라를 통해 선교 사역의 꽃을 피우고 가장 큰 열매를 거두게 되기를 소망한다.
- 지극히 작은 자 중 질그릇 같은 자 김 종필 올림
Rev. Elijah JF Kim, Ph.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