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을 보내며 함께 나누는 글
2015.12.19 12:28
얼마전.
서울대 윤영관교수님이 정년으로 은퇴를 하면서 남긴 마지막 강의를 들었습니다.
분단된 조국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면서
한반도 한민족의 하나됨을 꿈꾸며 그 길과 방법을 고뇌해 온.
' 어느 분단국 국제정치학도의 고뇌하는 꿈' - 이라는 부제를 붙인
그분의 강의 내용은 좋았습니다.
하나님을 품은 신앙의 여부를 떠나서라도. 객관적인 국제 정치/경제학자의 입장에서 보는,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은... 안타까움. 그 자체입니다.
긴 내용이지만, 꼭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안타까움과 함께. 간절한 소망을 꿈꾸기를 또한 원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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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관 서울대 정년기념 강좌, 2015.12.10)
<어느 분단국 국제정치학도의 고뇌와 꿈> - 윤 영 관
(인사)
목요일 오후 3:30분은 일하시는 분들께서 시간 내기 대단히 어려운 시간입니다. 더구나 여기는 관악산 골짜기라 시내에서는 큰맘 먹어야 오실 수 있는 곳입니다. 정년기념행사를 어떻게 할까 하다가 학생들이나 이미 직장에 진출한 제자들도 함께 하는 모임으로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번학기 강의하는 국제정치학개론 마지막 수업을 택해 공개강좌 형식으로 꾸며보았습니다. 그리고 폐가 될 것 같아 바쁘신 분들에게 일부러 연락을 안 드렸었는데... 그런데 어찌 하다 보니 이렇게 알려지게 되어 많은 분들이 오시게 되어버렸습니다. 시간 내주신 것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 자리에서 특별히 소개해드리고 싶은 분이 계신데 제 고등학교 은사님이신 이용현 선생님께서 참석을 해주셨습니다. 물리 선생님이셨는데 제가 졸업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사랑을 베풀어주신 선생님이십니다.
어려운 걸음 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리고 어제는 어떻게 소식을 들으셨는지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의 제 지도교수가 따뜻한 축하와 격려 이 메일을 보내주셨습니다. 제가 그분 지도하에 논문을 끝내고 교수가 된 다음부터는 이름(first name)으로 부르라고 그래서, 지금도 그분 호칭이 Chuck입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분들로부터 제가 입은 은혜가 큽니다.
국제정치학개론 수업은 제가 2002년부터 13년간 해온 강의입니다. 학생들에게 국제정치를 이해하는 나름대로의 시각과 능력을 심어주기 위한 강의입니다. 한 학기 강의의 첫 절반은 국가대 국가관계 중심 시각으로 전통적인 외교이슈들을 다루었습니다.
먼저 19세기 이래 오늘날까지 국제정치의 흐름의 줄기를 잡아주어 국가들의 외교 행동 패턴, 바꿔 말하자면 국제정치의 문법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그것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국의 지도자가 되더라도 엉뚱한 외교를 하지 않고 제대로 선진국 외교를 할 테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그쳐버리면 학생들이 약소국 콤플렉스, ‘고래싸움에 등 터진다’는 새우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약소국임에도 불구하고 대국과 외교협상을 해서 이겼던 사례들을 소개한 이론과 연구들을— 영국과 말타 간의 기지사용료 협상, 미국과 파나마간의 파나마운하 반환 협상— 살펴보았습니다. 한국의 국제정치학도들은 적극적 주인의식과 최소한 돌고래 의식을 가져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냉전기부터 지금까지 북한 문제를 중심으로 하는 한반도 외교를 살펴보고 우리 대북정책 및 외교의 궤적을 비판적으로 추적해보도록 했습니다.
강의 후반부에서는 국가대 국가가 아니라 전체 지구촌 사회가 당면한 이슈들을 중심으로 이론과 실제를 다루었습니다. 환경, 에너지, 빈곤, 인권, 경제 등의 주제들을 다루면서 이를 통해 지구촌 사회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이슈들이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어떻게 우리의 삶에 직접 연결되는지 깨닫도록 했습니다. 요즈음 많은 젊은 사람들은 눈이 세계를 향하고 있기에 이런 주제들을 다루어주어야 합니다. 그것들을 공부하면서 눈이 관악산을 넘어 5대양을 건너 세계로 향해 열리도록 자극하고자 했습니다. 지구촌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 일들이 자신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어있는지, 세계를 향해 꿈꾸도록 유도하고자 했습니다. 이 강의를 듣고 있는 학생 160여명이 지금 이 자리에 와있습니다.
원래 오늘 계획되었던 강의 주제는 이처럼 쭉 국제정치를 살펴본 후 우리 외교는 어디로 나가야할 것인지 미래 외교 전략을 생각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최근 썼던 <외교의 시대>라는 책에서 주장했던 3축 외교, 중첩 외교도 생각해보고 학생들에게 비평해보라고 과제를 주었고 이미 제출했을 것입니다. 내 책을 잘 비평한 학생들은 따로 커피를 대접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 주제에 한정해서 강의하기보다는, 귀한 손님들도 많이 오셨고 특별한 이벤트니까 제가 서울대교수로서 재직하면서 고민했던 연구 주제들을 중심으로 제 생각의 궤적을 추적하면서 함께 나누어보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제가 살아온 철든 시절 이후 지난 40여 년간 지적 행로를 한마디로 압축할 말이 있다면 그게 무엇일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그것은 ‘고뇌’였던 것 같습니다. 거기에 한 단어를 덧붙이자면 ‘분단국가의 국제정치학도’로서의 ‘고뇌’였던 것 같았습니다. ‘고뇌’라는 거창한 단어를 쓰자니 좀 주제 넘는 것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들어 한참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제가 1971년 외교학과를 재수해서 들어온 동기부터가 분단 문제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습니다. 어린 마음에 분단을 극복하는, 또는 통일을 달성하는 일에 기여하려면 외교를 잘 해야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외교학과를 고집해 재수를 해서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 후 분단 극복의 문제는 제 연구와 생각의 바탕을 형성하면서 이제까지 제 삶의 동기유인으로 작동해온 셈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3년, 서울대에서 25년 동안 국제정치학을 가르쳐왔지만 저의 학문적 동기는 실천적인 문제의식이 강했고 궁극적 귀결점이 한국이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엊그제 제가 이제까지 썼던 책들 제목을 한번 쭉 살펴보니 거의 대부분에서 한국이나 한반도라는 말이 들어간 것을 발견했습니다.
(패권국 쇠퇴의 경제적 원인에 대하여)
제가 처음 냈던 책은 1996년 “전환기 국제정치경제와 한국”이라는 책입니다. 그 책은 제가 박사 논문을 쓰고 미국에서 가르치며, 또 그 후 귀국해서 공부하면서 국제정치를 공부해본 결과를 정리한 책입니다. 그러면서 당시 새롭게 등장한 국제정치경제학이라는 분야를 한국에 소개하고자 했던 책이었습니다. 제가 전공한 분야가 국제정치학중의 세분화된 분야의 하나인 국제정치경제학입니다. 정치와 경제, 국제정치와 국제경제가 따로따로 노는 게 아니고 서로 긴밀히 맞물려 돌아간다는 입장에서 출발하는 학문분야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관심을 가졌던 것이 세계 역사에서 이른바 패권국이라는 초강대국들의 성장과 쇠퇴의 과정이었습니다. 특히 성장과 쇠퇴과정의 경제적 메커니즘에 관심을 갖고 박사논문을 썼습니다.
19세기 영국, 20세기 후반 미국 같은 나라들의 경제가 처음에는 땀 흘려 신기술을 개발하고 산업을 육성해서 무역중심으로 대국이 되어 성장합니다. 그런데 정점을 지나 쇠퇴의 과정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돈으로 쉽게 돈을 버는 금융부문이 확대되고 해외투자가 급속도로 증가하는 현상을 보입니다. 그 과정에서 국내 정치경제 제도, 예를 들자면 금융제도가 유연성을 잃고 경직성이 강화되어가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예를 들어 19세기말 영국의 공업지대 맨체스터에서는 새로운 산업에 투자할 자금이 부족하여 기업가들이 힘들어하는데 런던의 금융가들은 국내의 산업부문이 아니라 유럽대륙과 신대륙에 대규모의 자본을 투자합니다.
저는 경직성으로 표현했지만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사회과학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 대가인 맨수르 올슨(Mancur Olson)이라는 학자는 집단행동(collective action)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한 국가의 성쇠 과정을 설명했습니다.
패전국 독일이 승전국 영국보다 2차 대전 이후 훨씬 경제 성장이 빨랐던 것을 이상하게 생각해서 10년 동안 붙들고 늘어져서 개발한 이론입니다. 그는 영국처럼 오랫동안 사회가 안정된 나라를 보면 그 내부의 개인이나 기업들은 수많은 이익집단들의 담합 네트워크를 만들어내고 이들이 로비를 하는 바람에 경제는 덜 효율적이고 정체되며 통치는 더욱 어려워지는 현상이 벌어진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생산보다는 분배, 즉 이미 만들어진 부를 어떻게 나눌 것이냐에 집중해서 활동하고 로비합니다. 그런데 독일 같은 나라는 패전의 대 격변 속에 그러한 분배중심 이익집단의 네트워크들이 파괴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패전국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 빨리 성장할 수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이처럼 저의 관심은 국제정치의 역사를 지배했던 패권국들 권력의 쇠퇴의 경제적 메커니즘을 보다가 자연스럽게 한국으로 넘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두 번째로 쓴 책이 <21세기 한국정치경제 모델>이었습니다.
(새로운 한국 정치경제모델에 관하여)
잘 아시다시피 1960년대 이래 한국경제는 고속성장을 했습니다. 이러한 고속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경제모델을 ‘동아시아 모델’, ‘발전국가 모델’이라고 학자들은 불렀습니다. 이는 동시에 ‘박정희 모델’이라 부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국가가 주도하여, 생산자 집단, 즉 대기업과 손잡고 그들에게 여러 가지 인센티브를 제공하여 수출산업을 육성하고 세계시장에 수출해서 경제성장을 이끌었던 모델입니다. 이 과정에서 소비자와 노동자의 이익은 희생되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노동계층의 이해는 1987년 이후 현실정치의 민주화 과정 속에서 적극적으로 반영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1960년대 노동집약적인 경공업 발전단계를 넘어서서 1970년대에는 중화학공업과 같은 자본집약적인 산업의 발전을 통해 고속성장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이후 시간이 갈수록 이러한 국가주도 모델은 효용의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부작용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이 전개된 것입니다. 대기업은 정부가 밀어주는 금융지원 등을 받아 방만한 투자를 하고, 그 결과 부실채권이 누적되어 금융기관은 재벌의 포로가 되어버립니다. 기업, 금융부문에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고 정경유착과 부패의 고리가 깊어갑니다.
그런데 그러한 한국경제의 구조적 부실문제를 개혁을 통해 해결하지 못한 채 1980년대, 1990년대 초반이 지나가버립니다. 그러한 와중에 세계경제는 1980년대 이래 신자유주의 경제철학의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금융세계화와 통합이 진행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외부 국제환경이 바뀌는데 거기에 맞추어 빨리 내부적 부실구조를 청산하고 제도적 개혁을 이뤄내지 못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결국 새로운 세계경제질서와 부실한 내부경제구조가 충돌해서 1997년 IMF 금융위기가 터진 것입니다.
이러한 정치경제 모델의 특징은 정치, 경제, 사회 부문의 모든 권력들이 집중되어있고 집중된 권력끼리 담합구조가 형성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책에서 제안했던 대안적 21세기 모델의 핵심이, 정치, 경제, 사회 각 부문에서, 집중되어있는 권력을 분산시키자는 것이었습니다.
즉 청와대는 국정원, 검찰, 국세청 등 국가 권력기관을 자신의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하지 말고 자율권을 보장하라는 것, 경제계에서는 재벌 총수들의 권한 남용이 경제위기의 중요한 원인을 제공했으니 이사회 조직을 강화하여 총수의 권한을 견제해야 된다는 것, 금융계에도 자율권을 주어 독립적으로 시장원리에 따라 기능하게하고 도덕적 해이를 막자는 것, 언론의 경우도 선진국 언론처럼 경영권과 편집권을 분리하자는 것, 이러한 분산된 그러나 독립적인 권력기관들 간에 견제와 균형의 제도를 정착시키자는 것을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국가는 민간분야 기업 활동에는 개입하지 말되 각 경제주체들이 공정한 게임의 규칙을 지키도록 엄정한 심판관이 되어야하고, 이와 관련된 규제는 엄격하게 지켜나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가 정치적으로 독립되고 그 기능이 대폭 강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각 분야의 권력이 집중되고 그 집중된 권력, 즉 정치권력, 경제권력, 사회 권력이 한 동아리로 담합해 맞물려 돌아가다 보니 한국정치경제에 내부적 견제장치가 사라지고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난 자동차처럼 내리막길로 치달아 IMF사태가 터졌던 것입니다.
저는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제 이 책은 소용이 없어지기를 바랐습니다. 즉 제가 지적했던 문제들이 제가 원했던 방향, 즉 권력의 분산이 이루어지고 권력기관들 간의 상호견제의 틀이 정착되어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경제적으로는 도덕적 해이가 사라져 건전한 시장메커니즘이 작동하는 효율적인 경제체제가 되기를 희망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공정한 심판관 역할을 하는 국가의 틀 안에서 사회적 통합도 이루어지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 수년간의 한국 정치경제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부산저축은행 사태, 성완종리스트 사건 등이 단적인 사례입니다. 대단히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래서 감히 ‘고뇌’라는 단어를 이 강의의 제목에 붙여보았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많은 경우, 성공이 실패의 어머니가 될 수 있습니다.
인류역사상 어느 한 시대에 성공했던 발전 모델은 그 모델의 성공의 결과, 또는 외부 환경의 변화 때문에 효용성의 한계에 직면했습니다. 변화해버린 시대상황 속에서 안이한 자세 때문에, 또는 권력관계의 관성 때문에, 그 모델을 계속 고집하면 큰 부작용과 비용을 치루게 되고 나라 전체가 정체되고 기울어지는 것입니다. 그게 긴 인류 역사의 교훈입니다.
대단히 안타깝지만 지금 한국사회는 그러한 방향으로 기울어져가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사회는 지금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경제지표의 위기가 아니라 구조의 위기, 경제모델의 위기, 발상의 위기, 정치적 리더십의 위기인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21세기 개방시대, 내부적으로는 수평적인 지식집약 산업사회, 복잡한 이해집단들이 서로 얽히고 섥혀 스스로의 몫을 소리 높여 요구하는 시대입니다. 이러한 시대에는 새로운 21세기형 한국정치경제 모델과 새로운 민주적 정치리더십이 필요한 것입니다. 1970년대의 아직도 상대적으로 국제화되지 않았던 전기 산업사회, 그리고 이익집단 정치도 별로 활발하지 않았던 시대의 국가-재벌 연합모델이나 권위주의적 정치리더십은 이제 안 맞는 것입니다. 이제 상황이 완전히 변해버린 것이지요. 그런데 오늘날 한국경제의 운용방식이나 정치적 리더십은 마치 1970년대로 회귀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이 때문에 한국경제는 지금 큰 도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대기업중심 경제체제의 한계가 드러난 지 오래입니다. 대량생산과 관련해서는 한국의 재벌들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생산능력과 시장을 갖고 있는 중국이 한국의 선발 기술까지 따라잡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살길은 창의력과 혁신능력을 키워 중국이 따라잡기 힘든 분야를 개척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대기업들은 최근 면세점사업권 따내기 경쟁에서 볼 수 있듯이 혁신 의지나 능력은 한계에 도달한 듯합니다.
그렇다면 사실 규모가 작고 유연한 중소기업과 중견기업들이 혁신과 이노베이션의 본거지 역할을 해야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건실하게 번성할 수 있는 기업환경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기능이 제대로 집행되지 못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관계가 구조적으로 불공정하고 자본력 없는 중소기업들이 대기업들 횡포에 찌들려 기를 못 펴는 현실인 것입니다. 경제 양극화의 경향이 강화되고 이에 따라 정치적 사회적 불안정이 심화되고 있는 현실인 것입니다. 근본적인 경제시스템의 개혁이 필요하나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무기력과 무능력한 자세로 사태의 본질을 외면한 채 이념싸움과 소모적 정쟁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가장 비근한 예가, 세월호 사건입니다. 이 사건의 수사결과 드러났듯이 이러한 비극의 이면에는 무슨 피아, 무슨 피아라는 수많은 이익집단의 네트워크들이 존재했던 것입니다. 물론 형식적으로는 온갖 제도들이 다 갖추어져 있었지만 제대로 작동하는 것은 별로 없고 유명무실화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그런 비극이 초래되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과연 이러한 문제가 여러분은 근본적으로 해결이 되었다고 보시는지요? 새로운 정치경제모델과 새로운 정치리더십 없이 그런 문제들의 근본적 해결이 가능하다고 보시는지요?
지금 수많은 사람들은 한국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그대로 뒤따라가고 있다고 깊이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는 21세기 한국 현실과 1970년대식 발상 또는 리더십 스타일과의 엄청난 격차의 문제입니다. 저는 이 격차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입니다.
해결책은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접근법으로 한국사회의 도전들을 정면 돌파하고 개혁해나가는 새로운 리더십을 국민들이 창출해내는 것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격차는 공간적 차원에서도 조망해볼 수 있습니다. 즉 지금 현재 세계사적 흐름과 거기에 비춰본 한국정치경제의 현실간의 격차가 문제입니다. 16년 전 썼던 제 책 <21세기 한국정치경제모델>의 서문을 엊그제 다시 읽어보니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세계사적 대세와 한국적인 정치경제 현실 간에 존재하는 간격을 어떻게 좁혀나가야 될 것인가가 저자의 문제의식이다. 예를 들어 탈냉전적인 세계사적 대세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우리사회 도처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냉전적 의식, 제도, 관행들을 볼 때 막막한 심정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라는 구절입니다.
그런데 이때로부터 16년이 지난 지금의 한국 현실을 보면, 이 같은 막막한 심정이 여전히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세계는 지금 냉전이 끝난 지 25년이 되어 저 멀리 앞장서 가는데 우리는 아직도 냉전적 이데오로기 싸움에 매몰되어있는 것은 아닌지요? 한국 정치경제가 당면한 문제들을, 예를 들어 경제 및 사회 양극화, 인구감소 및 고령화문제, 청년실업 등의 문제들을 세계 각국의 성공적 극복 사례들을 벤치마킹하면서 문제해결이라는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해결해나갈 의지를 발동하지 못하고 좌냐 우냐의 이념싸움이 최근까지도 벌어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말한 고뇌의 이유입니다.
저는 그 책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했었습니다.
“사실 1997년 말이래 경험하고 있는 한국의 경제위기도 세계화, 특히 금융세계화의 도전을 기존의 정치경제체제가 극복해내지 못한 결과에 다름 아니다... 유연하면서도 효율성을 구가하면서도 그 성원들이 공동체 의식에 입각하여 사회적 연대를 견지할 때 한국 정치경제는 형평의 문제, 사회적 통합, 그리고 민주주의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저는 지식인의 역할과 관련하여 이렇게 이야기했었습니다. “지식인이 특수 이익집단의 대변인으로 전락해버림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지식인이 사회에서 사라져갈 때 그 사회는 공론은 존재하지 않고 적나라한 힘의 논리만이 지배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는 관료나 정책결정자들도 흔들리고 결국 국가의 중립성도 훼손되고 말 것이다. 또한 국민 모두는 파편화, 원자화되어버리고 사회는 전체적으로 방향을 잃어버릴 것이며 그러한 상황에서 민주주의란 결국 허구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우리 사회도 이러한 위험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아니 사실은 날이 갈수록 그 위험성이 더욱 심화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염려된다.”
16년 전 한 말이었습니다만 안타깝게도 지금의 한국사회에서 그러한 우려가 더욱더 현실화되고 있지 않은지 걱정되는 것입니다.
(분단 극복에 관하여)
제가 단독으로 쓴 세 번째 책은 한 달 전에 나온 <외교의 시대>라는 책입니다. 제가 2003년에서 2004년 초 외교통상부 장관을 할 때, 상당히 힘들었습니다. 미국은 역사상 유례없는 강경 보수 공화당 정부였고, 한국에서는 진보 정부였습니다. 그 사이에서 핵문제 등, 여러 현안들을 푸느라고 힘들고 외로웠습니다. 그런데 그때 느낀 것은 학계가 외교정책 방향과 관련해서 중심을 잡아주지 못했고 그러다보니 수많은 풍문들, 감성적이고 자극적인 주장들이 난무했습니다. 그래서 장관을 그만두면 무엇보다 책을 써야 되겠다, 일반 대중들이 읽기 쉬운 책, 읽고 전반적인 국제정치의 흐름 속에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철저히 우리 입장에서 쓴 책을 내야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제가 여기서 철저하게 우리 입장에 서서 쓴 책이란 말을 했습니다. 이것은 제 나름대로 상당한 의미를 둔 말입니다. 국제정치학, 사실 모든 사회과학은 자연과학과 달라서 지구상 어느 나라에서나 똑같은 내용이 통용되는 그런 학문이 아닙니다. 즉 연구자가 살고 있는 시간과 공간에 따라 문제의식이나 논의 내용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이점과 관련해서 저는 동주 이용희 선생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문리대 시절 본4강의실에서 들은 국제정치론 강의가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국제정치학도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의 압도적 영향을 받은 학문입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작은 나라, 분단국가인 우리 입장에서는 미국의 연구나 이론들을 접할 때 걸러내는 작업을 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재창조의 작업이 필요한 것입니다. 사실 그런 이유로 제 강의에서 국제정치의 대국들의 외교를 강의한 뒤 소국이 어떻게 이러한 대국들을 다뤄야될지 협상사례를 들여다보게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냉전시 한국외교를 우리 입장에서 비판적으로 검토해보기를 학생들에게 요구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정계나 지식사회 일부에서는 동맹국 미국을 무조건 지지해야 보수고 우파다, 그리고 그 반대 진영에서는 무조건 반대해야 진보고 좌파다라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물론 한미동맹은 대단히 중요하고 한미 양국의 국익이 상호 많은 영역에서 중첩됩니다. 그러나 사실 중첩되지 않는 부분도 분명히 있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한국은 통일이야기를 많이 하고 중시합니다.
그러나 미국의 주된 관심사는 북핵문제입니다. 우리에게 북핵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하기 때문에 미국을 포함한 주변국과 협력해서 비핵화 외교를 계속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이 말하는 또는 정치인들이 말하는 ‘통일’이 단순한 정치적 수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안보가 아닌 다른 부문들에서는 남북 간에 인적, 경제적, 사회적 연결고리를 심화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남북 간의 통합의 구심력이 강화될 것이고, 그래야 통일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지금 우리 외교나 대북정책의 방향을 보면 그러한 문제의식이 없는 듯이 보입니다. 막연히 그때그때 터진 일들을 수습하기에 바쁜 듯합니다.
독일 사민당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1960년대 말-70년대 초반에 동방정책을 시행할 때 당시 독일의 맹방인 미국은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미국의 헨리 키신저 안보보좌관은 동방정책을 가리켜 ‘기회주의적인 민족주의의 발로’라고 혹평했습니다. 더 나아가 브란트는 ‘그 결과를 감당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고 폄훼하기까지 했습니다. 이처럼 동맹사이에서도 국익의 격차는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중요한 것은 냉전의 와중 속에서도 브란트 정부는 그들이 판단한 국익에 따라 충실하게 행동했던 점입니다.
1982년 집권한 기민당 지도자이자 보수정객인 헬무트 콜은 미국과 서독의 국익의 편차를 이해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과감하게 경쟁정당인 사민당의 동방정책을 자신의 정책으로 채택했고 이것이 동서독간의 통합의 구심력을 강화하여 1990년 통일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저는 2013년 베를린에 안식학기로 6개월간 지내면서 독일의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을 만나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물어보았습니다. 어떻게 이른바 보수 우파정당 출신 총리가 진보 좌파정당인 사민당의 동방정책을 채택하게 되었냐라고 말입니다. 그랬더니 하나같이 하는 말이, 독일보수정당 기민당이 아데나워 총리 이래 서방과의 관계를 대단히 중요시 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보수정당 지도자들이 깨달았던 것은 서독이 그렇게 중시하던 서방국가들은 모두 독일분단이라는 현상유지, 현상관리에만 관심이 있었지 현상변경, 즉 통일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음을 간파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이 문제는 독일사람 스스로 주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고 그래서 경쟁정당인 사민당의 동방정책을 채택했던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저는 고뇌했습니다.
아니 절망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그들의 정치문화와 우리의 정치문화가 비교가 되었기에 말입니다.
그들의 주인의식이 부러웠고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는 여야가 자기 정당의 입장을 과감히 버리고 서로 협력할 수 있었다는 것이 부러웠습니다.
마침 그때 인터넷을 통해 저 멀리 서울에서 들려오는 최대 정치뉴스는 국정원의 대선 개입이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우리 정치는 냉전적 정치문화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금방 말한 대로 독일은 냉전이 정점을 달리던 그러한 국제질서 속에서도 보수진보, 여야, 좌우가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여 냉전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철저히 국가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단결해서 동독 및 동구권과 관계를 개선했고 이것이 동서독간의 통합의 구심력을 강화하여 결국 통일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에서는 지나가버린 세계사의 냉전시대 이념 전쟁이 한창입니다. 남북간 냉전대결은 이미 우리 한국의 승리로 끝난 지가 오랜데도 아직도 좌냐, 우냐, 하면서 냉전이데올로기 논쟁의 포로가 되어 본질을 놓치고 세계의 흐름을 보지 못합니다.
정치인들은 그러한 냉전이데올로기 논쟁을 눈앞의 사적 정파적 이익과 목적을 위해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지금 세계사적 대세와 한반도적 정치의식 사이에 엄청난 간격을 목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국정교과서 논쟁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좌냐 우냐 논쟁을 불러일으킬 에너지가 있다면 이를 교육개혁에 더 쏟아야할 때가 아닌가, 사교육비가 비싸 젊은 부부들이 아이를 안 낳고 그래서 출산율이 세계 최저고 그래서 인구 감소가 시작되어 나라의 기본이 흔들리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근본적인 도전들은 앞에서 말한 대로 관련 이익집단들의 네트워크에 걸려 본질은 건드리지 못하고 주변적인 이슈들만 건드리면서 무언가 하는 시늉만 하고 있는 듯한, 그래서 한 치도 앞으로 못나가는 현실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대북전략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반도는 아직도 지정학적 한계가 엄존합니다. 아무리 세계화, 경제의존의 시대라 하더라도 이를 절대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네 나라, 해양세력 두 나라, 대륙세력 두 나라 간에는 한반도 분단으로 세력균형이 유지되고 있든 상태입니다. 이들은 한반도가 통일되어 통일한국이 상대 경쟁국에 가까워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내심 통일보다는 현상유지, 즉 분단을 선호합니다. 저는 이것을 국제차원에서 한반도의 통일을 반대하는 방향으로 윈심력이 작용하고 있다고 표현합니다.
예를 들어 미국은 통일한국이 중국에 붙어 미국과 일본을 적대할 까 우려합니다. 중국은 통일된 한국이 미국, 일본과 연합해서 자기네를 포위할까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정치구호가 아니라 정말로 우리 정치지도자들이 그리고 국민들이 통일을 원한다면, 앞으로 보수정부가 되었든 진보정부가 되었든, 밖으로는 외교를 통해 원심력을 약화시키고 안으로는 남북 간의 통합의 구심력을 강화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 밖에는 통일에 이르는 길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구심력을 강화하는 가장 적합한 수단이 경제입니다.
핵개발과 관련된 제재는 지속하면서도 다른 영역에서 북한이 시장원리를 지키겠다면 경제협력을 강화해서 남북 간에 경제가 서로 얽히고 섥히도록 만들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개성공단 같은 대북경협프로젝트를 많이 해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북한 경제가 중국이 아니라 한국에 통합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통합의 구심력이 강화되어 통일이 가까워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정치현실은 그러한 지경학적 접근에 대해, 즉 지정학적(geopolitical) 한계를 지경학적(geoeconomical) 접근으로 풀어나가는 것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듯합니다. 주요 담론은 아직도 진보냐 보수냐, 좌냐 우냐, 퍼주기냐 무력충돌이냐 하는 양분법적 사고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저는 다시한번 고뇌하게 됩니다.
21세기 지금은 경제의 시대입니다. 경제로, 지경학적 접근으로 문제를 풀 수 있습니다. 경제가 정치를 바꾸는 시대인 것입니다.
냉전이 끝난 것도 소련의 경제개혁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북한을 고립시킨 채로 외부에서 압박만해서는 비핵화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은, 지난 25년의 북핵 외교의 실패에서 이미 입증되었습니다.
제가 두 달 전쯤 워싱턴에서의 회의에 갔더니 이미 미국내 공화당 계열, 민주당 계열의 싱크탱크 사람들이 그 동안의 대북정책이 실패였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한국 정부가 주인의식을 갖고 주도적으로 새로운 발상과 대북정책으로 나아가야만 할 때인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변국의 협조, 특히 미국의 이해와 협조를 확보해야 될 때입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국내정치적 정쟁은 중단해야 될 것입니다.
(꿈에 관하여)
제가 너무 비관적인 말만 해서 미안합니다. 기본적으로 지식인은 비판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비판점들을 공개하고 떠들어 시끄럽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지식인의 역할이라고 봅니다. 소크라테스가 이야기했듯이 지식인은 소의 등에 앉아 있는 등에가 되어야할 것입니다. 때로 따끔하게 물어서 소가 움직이게 해야 됩니다. 물론 소꼬리에 맞아 죽는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습니다만.
그러나 저의 이 강의의 목표는 여러분을 비관주의자로 만들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만일 국민들이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첫째, 21세기 수평적 개방적 한국사회에 걸맞는 민주적 리더십을 탄생시키고,
둘째, 그리하여 권력분산과 상호견제의 새로운 정치경제모델을 정착시키고,
셋째, 국제경제에서의 경쟁력과 함께 국내적 사회통합의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고,
넷째, 동맹과 국제사회를 설득하면서 남북간 통합의 구심력을 강화하는 새로운 대북정책을 실천해나가며,
다섯째, 전략적 방향감각을 갖고 21세기 한국의 국제위상에 걸맞는 선진국 외교를 실천해나갈 수 있다면 우리의 미래는 희망이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유권자들이 과거처럼 정치인들의 문제해결 능력을 검증하는 것을 소홀하고 지역정치, 이념정치, 감성정치의 포로가 되어 엉뚱한 정치인들을 선출해 낸다면 희망이 없을 것입니다.
나는 앞으로도 이러한 희망적인 일들이 일어날 수 있도록 지식인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려 노력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통일의 꿈을 달성하는데 이런 저런 방식으로 기여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그것이 나의 꿈입니다.
여기 많은 학생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아마도 대부분 20대일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간절히 부탁하고 싶습니다. 현실이 어렵더라도 꿈을 꾸기를 포기하지 말라구요. 여러분보다 나이든 나도 계속 꿈꾸겠다고 하는데 젊은 여러분들은 두말할 여지가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내가 이런 이야기하면 여러분 중 어떤 사람들은 윤 교수는 ‘금수저’니까 그런 이야기 쉽게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달 전쯤 학생들과 엠티를 가서 밤새도록 이야기했습니다. 내 과거에 대해 질문이 많아 이야기를 쭉 해주었더니 한 학생이 하는 말이 “선생님도 저처럼 ‘흙수저’셨네요. 반가워요. 저는 ‘금수저’인 줄 알았는데...”라고 이야기하더군요. 나도 내 나름대로 고생하며 살아온 경험에서 이런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수업시간에 가끔 이야기해왔지만 여러분 한사람 잘먹고 잘살려 하는 것을 나는 꿈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장래에 어떤 분야에서 어떤 위치에서 어떤 일을 하든지, 그 일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겠다는 자세로 살자는 것이지, 꼭 높은 자리 힘 있는 자리에 올라가라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자리에서든 그런 자세로 사는 것, 그것을 나는 ‘꿈꾼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정치를 통해 국민들이 더 풍요롭게 살게, 외교를 통해 국민들이 더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게, 경제 활동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미술, 음악 등 예술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세계를 맛보게, 과학 공학 분야 활동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의 삶을 편리하게 기여하는 것, 그것이 바로 꿈입니다.
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이 얼마나 각박한지를. 3포시대가 아니라 5포, 7포시대가 운위되고 있는 현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성세대의 한사람으로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렇게까지 여러분을 힘들게 몰아가지 않도록 이 세상을 만들었어야 되는데 그러지 못해서.
그러나 여러분은 기억해야 합니다. 인간은 혼자 사는 동물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지요. 함께 사는 존재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사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젊은이들 사이에서 공동체 의식이 약해져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나는 수업시간에 종종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서울대 등록금이 사립학교의 절반밖에 안되는데, 그것은 국민세금을 거두어 지원하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만일 서울대생들이 혼자 잘 먹고 잘살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찬 학생들이라면 왜 국민세금으로 서울대생들을 도와주어야하냐고 말입니다.
그리고 또 내가 여러분들에게 종종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주유소에서 수년 동안 아르바이트해서 번 전 재산 3천 만원 중에서 100만원을 서울대 도서관에 기부한 젊은 고졸 학력 청년의 편지 말입니다. 어찌 보면 상대적 박탈감에 젖어 세상 모두를 미워할 법한 청년이 서울대 학생들이 조국의 미래라고 생각해서 기부한다고 말하면서 서울대가 한국의 서울대가 아니라 세계의 서울대로 비상하라고 격려하는 편지를 보냈던 것 기억하십니까? 그 고졸 학력의 청년이 기부한 돈으로 만들어진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여러분이 어떤 생각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할지는 여러분이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여러분 한사람 스스로를 위해서도 필요한 자세입니다. 모 일간지에 3년 전엔가 난 컬럼 제목이 “열심히 공부해서 출세하면 감옥 가는 나라”였습니다. 여러분들이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겠다고 하면서 살다보면 심지어는 감옥갈 기회까지 올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연적으로 늙어가면서 보수화되기 마련입니다. 그러다보면 나이 들어 한순간 생각하기를 다른 사람들도 다 하는데 뭐 괜찮겠지 하고 자칫 잘못 판단하면 그렇게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엊그제 여러분들 선배로 사회부출입하는 기자 한사람이 하는 말입니다. “선생님, 정말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저명한 신문기사 주인공들 중에 서울대 출신들이 그렇게 많은지 몰랐어요”라고 말입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마음 속에 일종의 자기제어장치, 또는 정신적 방부제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이야기한 더 많은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겠다는 꿈인 것입니다.
꿈꾸는 여러분들이 희망이고 해답입니다. 나는 지식인으로서 내가 느끼는 심정을 감히 ‘고뇌’라고 하는 표현을 써서 여러분에게 털어놓고 하소연했습니다. 사실 한국 사회가 2년 후 무슨 충격이 어떻게 몰려와서 어떻게 될지 솔직히 짐작이 안 됩니다. 이런 식으로 가면 희망이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진정으로 여러분들이 꿈을 꾸고 있는 한, 희망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한국의 그리고 지구촌 앞날의 해답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역사의 주인이고 원동력이 되어 세상을 바꿔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성을 쌓아놓고 그 안에 안주하지 마십시오. 꿈을 꾸되 유약하지 말고 강인해지십시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오뚜기처럼 일어서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되십시오.
(마무리 인사)
이번 학기 내 강의를 들은 어떤 학생이 이런 구절을 수강 후기에 썼습니다. 안토니오 그람치의 견해에 내가 공감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학생의 말이 의미가 깊어 읽어봅니다.
“저는 안토니오 그람시가 한말을 좋아합니다. 지성으로 비관할지라도 의지로 낙관하라. 사실로 구성된 세계는 늘 삭막해보이지만 인간에겐 의지가 있다는 점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믿습니다. 냉철한 반성을 계속하면서 뜨거운 마음으로 공부하는 학생이 되겠습니다.”
이 학생이, 아니 여기계신 모든 학생들 여러분이 이런 자세로 살아간다면 대한민국은 희망이 있고 비상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한국의 꿈이고 세계의 꿈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과 25년간 함께 해서 진심으로 행복했습니다.